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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아닌 곳/기타 2016. 4. 23. 06:39

라틴 쿼터에서

절대 발음하지 못하겠는 RER 기차역 - 영어 발음으로는 '덴퍼트 로쉐로'라 읽히는데 지하철 안내 방송 들어보면 '돈페 로시쿠'라고 하는 - 근처에 묵고 있다. 아, 더 가까운 지하철 역이 하나 있는데 이건 발음은 커녕 역 이름을 기억을 못 한다. 역 이름 모르고, 못 읽어도 눈짐작으로 지하철을 잘 타고 다닌다. 지금은 그저께 왔던 (또 역시 발음을 못하는) 시테 섬 윗동네에 왔다.

10시가 다 된 늦은 저녁이라, 홍합과 샤블리 와인을 시켜 바쁘게 손과 입을 움직여 먹고 마시며 눈으로는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를 읽어 내려간다. 한참 읽다 만 지 2년 정도 돼서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있는데, 내용이 울리는 정도를 보니 두 번 읽길 잘했다 싶다.

"국가나 네이션을 단순히 계몽으로 해소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교환양식에서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들은 관념적인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그것은 상품교환에서 기인한 자본제 경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제 시스템은 물질적이기는 커녕 신용에 근거하는 관념적 체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항상 공황(위기)를 내포하는 것이다..."


파리에 있는 것은 참 좋다. 모든 게 다 좋지만 아무래도 가장 좋은 것은 어떤 쇼윈도를 지나쳐도 인간을 상품화하거나 기타 인간성을 훼손하는 모습을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스템 -상점- 밖에는 어린애를 데리고 길바닥에 스폰지 매트리스를 깔아 오늘 밤 잠자리를 준비하는 아랍인 가족들이 많다.


그저께 이 옆 블록 재즈바에 가서 바이올린이 들어간 콰르텟을 듣고 와인을 마시며 보낸 저녁이 너무나 완벽했기에, 오늘은 낮부터 졸렸음에도 기를 쓰고 또 왔는데 아무래도 애프터 아워 쇼가 시작되는 12시까지 버티는 것은 중년의 체력에는 무리다. 책을 덮고 나비에게

'나 새삼 당신 존경해. 처음 봤을 때의 네 나이보다 아직 내가 어린데, 어제 나 콜라보레이션 디너 끝나고 너무 졸려서 애들 세느강에서 술마시러 2차 가는데 못 쫓아갔다... 지금도 재즈바 가려고 12시까지 버텨보려 하는데 너무 힘들어.'라고 쓸데없는 메세지를 보내고 있노라니 그래도 공연 시간이 거의 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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